[리포트 너머①] ‘금융불안’ 경고하는 한은… 스테이블코인은 정말 위험할까
정부·국회, 스테이블코인 민간 참여로 가닥한국은행, 민간보다 ‘은행 중심’ 입장 고수전문가 "리스크는 코인이 아니라 제도 부재""준비금 100%로 은행보다 안정적일 것"
[블록미디어 오수환 기자, 김해원 수습기자] 스테이블코인을 둘러싼 논의가 ‘금융안정’과 ‘혁신 경쟁’ 사이에서 맞서고 있다. 한국은행은 금융시스템 불안을 이유로 스테이블코인 발행 주체를 은행으로 한정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반면 업계는 “진짜 위험은 늦은 대응”이라며, 과도한 경계가 오히려 혁신의 속도를 늦출 수 있다고 지적한다.
현재 스테이블코인 시장은 전체 금융시스템에 비해 규모가 작고, 글로벌 기준으로도 시스템 리스크를 초래할 수준은 아니다. 각국이 민간 발행 스테이블코인을 제도권에 편입하며 신뢰를 구축하고 있는 만큼, 한국이 경계에 머문다면 디지털 결제와 자금 이동 혁신 경쟁에서 뒤처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 같은 논의는 국회와 통화당국 사이에서도 뚜렷한 시각차로 이어지고 있다. 국회는 발행 주체의 범위를 넓히는 방향을 모색하는 반면, 한은은 금융안정 훼손 가능성을 이유로 신중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4일 국회에 따르면 민병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전날 국회에서 열린 스테이블코인 세미나에서 정부가 준비 중인 디지털자산 기본법은 국회에 발의된 법안들과 큰 틀에서 동일한 방향으로 마련되고 있다고 밝혔다. 정부안에는 디지털자산 전반에 대한 규율뿐 아니라 스테이블코인 관련 내용도 포함될 예정이다.
현재 국회에 발의된 5개의 디지털자산 기본법은 스테이블코인 발행 주체를 은행으로 한정하지 않고, 일정 자본금 등 요건을 충족한 사업자에게도 허용하는 방향이다. 정부가 준비 중인 기본법 역시 국회 기조를 반영할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반면 한은은 비(非)은행 사업자가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할 경우 자금 유출이나 디페깅(가치 연동 붕괴) 등으로 금융시스템 전반에 불안이 확산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특히 대규모 환매가 발생할 경우 ‘코인런’으로 이어져 전통 금융권의 유동성 위험으로 번질 수 있다는 점을 가장 큰 리스크로 보고 있다.
한은은 지난달 발표한 보고서에서 “스테이블코인은 준비자산을 100% 안전자산으로 구성하더라도 ‘코인런’이 발생할 수 있다”며 “디지털 환경에서는 투자자들이 클릭 한 번으로 대량 환매를 요청할 수 있어, 전통적 뱅크런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유동성 위기가 확산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어 “스테이블코인이 법정통화에 1대1로 연동돼 있다 하더라도 시장 불안이 커질 경우 지급결제 체계 전반에 충격을 줄 수 있다”며, 비은행 발행의 위험성을 강조했다.
결국 한은의 우려는 스테이블코인이 구조적으로 신뢰 유지가 어렵다는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준비자산이 아무리 안전하더라도 투자자들이 동시에 환매를 요청하면 단기간에 유동성 위기가 발생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한은의 우려와 달리, 전문가들은 스테이블코인의 위험이 구조적 한계 때문이 아니라 제도적 기반의 부재에서 비롯된 문제라고 본다. 위기 상황에서도 신뢰를 지탱할 장치가 충분히 마련되지 않았기 때문에 불안이 증폭된다는 지적이다.
은행 예금에서도 대규모 인출 사태는 반복돼 왔다. 결국 핵심은 자산의 형태가 아니라 신뢰를 유지할 제도적 장치가 존재하느냐에 달려 있다. 오히려 스테이블코인처럼 100% 준비자산 보유를 의무화하는 구조는 자산 건전성 측면에서 은행보다 훨씬 보수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적절한 규율이 뒷받침된다면 유동성 위험을 선제적으로 관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서병윤 DSRV 최고전략책임자(CSO)는 “은행은 예금의 약 10%만 현금으로 두고 나머지는 대출로 운용하기 때문에 인출 요구가 몰리면 유동성이 부족해 뱅크런이 발생한다”며 “반면 스테이블코인은 고객이 예치한 자산만큼 현금이나 단기국채를 그대로 보유한다”고 말했다.
복진솔 포필러스 리서처도 “스테이블코인은 은행 예금처럼 지급준비율이 10% 수준이 아니라 100% 예치 자산 기반”이라며 “법제화가 병행된다면 시스템 리스크 면에서는 전통 은행보다 안정적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스테이블코인이 아직 초기 단계에 있는 현 시점에서, 전통 금융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한은이 우려하는 수준보다 훨씬 제한적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당분간 스테이블코인의 활용은 결제보다는 디지털자산 시장 내부에 머물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에서다.
글로벌 주요 기관들도 스테이블코인이 당장 금융 시스템을 흔들 만큼의 체계적 위험(Systemic risk)을 초래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골드만삭스는 지난 8월 보고서에서 “결제용 스테이블코인의 채택 속도는 여전히 제한적이며, 사용처가 디지털자산 거래에 국한돼 있다”고 밝혔다. “일반 소비자 결제에서는 거의 활용되지 않고 있다”면서도 “규제와 기술이 성숙하면 활용 범위가 넓어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스테이블코인의 초기 활용이 제한적인 만큼, 국제 흐름과 동떨어진 과도한 규제를 도입하기보다 시장 성장과 혁신을 촉진할 방향으로 법제화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서병윤 CSO는 “전 세계가 AI와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새로운 가치 사슬을 구축하고 있다”며 “제도가 그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한은은 스테이블코인을 두려워하지만, 진짜 위험은 금융 혁신의 흐름에서 뒤처지는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출처: BlockM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