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법 시계제로③] ‘느림보 규제’ 대가는 투자자 몫⋯ ‘디지털 쇄국’이 부른 이용자 피해
[블록미디어 김해원 기자] 글로벌 디지털자산 시장에 기관 자금이 본격 유입되며 각국의 규제 체계도 빠르게 정교해지고 있다. 다만 한국의 경우 규제 강화 속도가 산업 제도화 속도를 앞서가면서, 해외 거래소 이용 제한에 따른 이용자 불편이 커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근 해외 거래소 애플리케이션의 접근성이 제한된다는 소식에 국내 이용자 사이에서는 불만이 제기되고 있다. 해외 거래소들이 한국 시장에 진입하기 위해 넘어야 할 규제 장벽은 무엇일까.
18일 업계에 따르면 구글은 지난 15일 디지털자산 관련 앱 정책을 변경했다. 이에 따라 디지털자산 거래소 및 소프트웨어 지갑 개발자는 한국 금융정보분석원(FIU)에 가상자산사업자(VASP) 신고서를 제출해야 하며, 요건을 충족하지 못할 경우 오는 28일부터 구글 플레이스토어에서 앱을 제공할 수 없다고 명시했다.
구글 측은 “블록체인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는 가운데, 각국 규제 환경 변화에 따라 개발자는 현지 법규에 부합하는 추가 라이선스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고 밝혔다.
미국의 경우 금융범죄단속네트워크(FinCEN)에 금융서비스업으로 등록하고, 주에서 송금업 라이선스를 취득하거나 연방 또는 주 정부 인가를 받은 은행 기관이어야 한다. 일본 역시 디지털자산 거래소 서비스 제공업체로서 금융청(FSA)에 정식 등록된 사업자만 앱 제공이 가능하다. 한국은 특금법에 따라 국내에서 디지털자산 관련 사업을 영위하려면 FIU에 가상자산사업자 신고를 해야 한다.
현재 구글 플레이스토어에서 앱 설치 및 업데이트가 불가능해지는 것은 사실상 서비스 이용 중단에 가깝다. 금융 앱 특성상 보안 패치가 중단될 경우 해킹 위험도 커진다. 웹 접속이나 애플 앱스토어를 통한 접근은 아직 가능하지만, 안드로이드 이용자 불편은 불가피하다. 업계에서는 애플 역시 유사한 정책을 도입할 경우 파급력이 클 것으로 보고 있다.
FIU가 공개한 가상자산사업자 신고 매뉴얼에 따르면, 사업자는 정보보호관리체계(ISMS) 인증, 실명확인 입출금계정 확보, 대표자 및 임원의 결격 사유 여부 등을 충족해야 한다. 신고 수리 여부는 원칙적으로 30일 이내 통보되지만, 서류 보완 요청이 있을 경우 심사 기간은 더 길어질 수 있다.
외국 사업자의 경우 국내 사업장 소재지와 연락처, 국내 거주 대표자 지정, 외국어 서류의 국문 요약본 제출 및 현지 공증까지 요구된다. 업계에서는 형식적인 정량 요건 자체는 과도하지 않다는 평가가 나오지만, 최근 금융당국이 국내 사무소 현장 검사나 대주주 적격성 검토 등 정성적 요소를 강화하면서 해외 거래소의 진입 부담이 커졌다는 분석이다.
강련호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는 “신고 절차가 형식적으로 까다롭다기보다는 내부적으로 심사 과정이 길어지고 정성적인 요소들이 작용하는 부분이 있다”며 “우리나라의 자금세탁방지(AML) 체계는 다른 국가들에 비해 상당히 정밀하게 설계돼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설령 신고를 마치더라도 오더북 공유가 불가능하고 파생상품도 허용되지 않아 사업 아이템 자체가 제한된다”고 덧붙였다.
현재 FIU에 신고된 가상자산사업자는 업비트·빗썸·코인원·코빗·고팍스를 포함해 총 27곳에 불과하다. 설령 해외 거래소가 신고 절차를 통과하더라도, 국내에서 사업을 확장하기는 쉽지 않다.
실제 글로벌 거래소 크립토닷컴은 2022년 국내 디지털자산 거래소 ‘오케이비트(OK-BIT)’와 전자결제대행사 ‘피앤링크(P&Link)’를 인수하며 한국 시장에 진출했다. 그러나 이후 대표이사 변경 등 주요 변경 신고가 1년 넘게 수리되지 않으면서 원화 거래소 전환이나 신규 사업 추진은 사실상 멈춘 상태다. 거래 서비스는 유지되고 있지만, 본격적인 사업 확장은 제한적인 상황이다.
국내에서는 특금법상 트래블룰 준수 의무로 인해 미신고 가상자산사업자와의 거래가 금지되고, 다른 거래소와의 오더북(호가창) 공유 역시 사실상 불가능하다. 파생상품 거래도 허용되지 않아, 결제·디파이·지갑 등 해외 거래소들이 주력으로 키우는 사업 모델을 국내에서 구현하기 어렵다. 해외 거래소들이 현물 거래를 넘어 종합 금융 플랫폼으로 진화하고 있는 흐름과 대비된다.
이 같은 규제 환경은 과거 사례에서도 확인된다. 바이낸스는 2020년 ‘바이낸스 KR’을 설립했지만, 서비스 개시 약 반년 만에 철수했다. 당시 원화를 스테이블코인 BKRW로 전환하는 구조를 도입했으나 거래량이 저조했고, 2021년 개정 특금법 시행으로 오더북 공유가 차단되면서 사업 지속이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반면 일본에서는 다른 흐름이 전개됐다. 바이낸스는 2022년 일본 거래소 사쿠라 익스체인지(SEBC)를 인수한 뒤 ‘바이낸스 재팬’을 출범시켰고, 일본 금융청의 정식 허가를 받았다. 일본 정부는 웹3와 블록체인을 미래 성장 동력으로 규정하고, 자민당 주도로 가상자산 정책 태스크포스(TF)를 운영하는 등 제도권 편입에 적극적이다.
이 같은 차이는 일본의 디지털자산 규제 체계에서 비롯된다는 분석이다. 일본은 디지털자산을 지급결제 수단이자 투자 대상으로 보고, 자금결제법과 금융상품거래법 두 법률로 나눠 규제하고 있다. 결제 기능에는 자금결제법을, 투자·금융상품적 성격에는 금융상품거래법을 적용해 규제 공백을 최소화한 구조다.
자금결제법은 디지털자산 교환업자에 대한 금융청 등록 의무와 자금세탁방지, 이용자 자산 분리 보관 등을 규정한다. 금융상품거래법은 디지털자산의 투자 자산 성격을 다루며, 파생상품 거래와 증권형 토큰(STO), 불공정거래 규제까지 포괄한다.
일본은 2023년 자금결제법 개정을 통해 스테이블코인을 ‘전자결제수단’으로 정의하고 관련 취급업자 허가 제도도 도입했다.
반면 한국은 디지털자산을 금융상품으로 분류하지 않고 특금법을 중심으로 관리해왔다. 이로 인해 파생상품이나 스테이블코인, 중개업 등 새로운 서비스는 제도권 밖에 머물렀고, 해외 거래소 역시 국내에서 사업 모델을 확장하기 어려운 구조가 형성됐다는 평가다.
신경희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일본은 2019년 금융상품거래법 개정 이후 암호자산이 투자 대상으로 자리 잡으며 규제 정비가 본격화됐다”며 “이미 자금결제법을 통해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허용한 일본의 규제 체계는 디지털자산기본법을 논의 중인 한국에 시사점을 준다”고 말했다.
이 같은 규제 환경은 향후 디지털자산기본법 제정 여부에 따라 변화할 가능성도 있다. 법안에는 업종별 인가·등록 체계 정비, 대주주 요건 명확화 등에 대한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국회에서도 파생상품 도입 필요성에 대한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김재진 닥사(DAXA) 부의장은 최근 간담회에서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외국인·법인 투자 허용과 파생상품 시장 필요성에 대한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고 밝혔다.
디지털자산 업계 관계자는 “기본법 제정 이후 파생상품·결제 등 다양한 상품이 허용될 경우 국내 시장 구조 자체가 달라질 수 있다”며 “해외 사업자한테도 국내 시장 진입 길이 열릴 수 있다”고 말했다.
출처: BlockM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