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금 왕국’ 일본의 반전… 엔화 스테이블코인 ‘JPYC’ 메신저 타고 일상으로
현금에 익숙한 일본, 결제 전환이 더딘 이유소액결제·B2B·국채까지…JPYC의 다층 전략유동성 한계 속 LINE 연동, 대중화의 분기점 될까
[블록미디어 오수환 기자] 일본은 여전히 현금 사용 비중이 높은 국가다. 현지 식당을 방문해 보면 현금 결제만 가능한 곳이 적지 않다. 자판기 문화가 발달한 일본에서는 종업원이 주문을 받는 대신, 매장 입구의 자판기에서 미리 주문하는 방식이 일반적인데 상당수 기기가 현금 결제만 지원해 신용카드나 전자결제 수단을 사용할 수 없다. 이 때문에 외국인뿐 아니라 현지 소비자들 사이에서도 불편하다는 지적이 꾸준히 나온다.
현금 사용이 많은 배경에는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한다. 장기간 지속된 초저금리 환경은 은행 예금에 자금을 맡길 유인을 약화시켰고 금융위기와 대지진 등 대형 재난 경험은 실물 화폐에 대한 신뢰를 강화했다. 여기에 고령화 구조까지 맞물리면서 현금은 단순한 결제 수단을 넘어 ‘안전자산’으로 인식되고 있다.
소비 행태 역시 이를 뒷받침한다. 일본 소비자의 84%는 소액 결제에서 여전히 현금을 사용한다. 카드 수수료 부담으로 일부 소상공인이 디지털 결제를 중단하고 현금 결제로 회귀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편의성보다 비용과 안정성이 우선되는 시장 환경 속에서, 새로운 결제 수단이 빠르게 확산되기 어렵다는 평가다.
이처럼 현금 중심의 결제 관행이 장기간 유지되면서, 소액 결제와 일상 소비 영역에서는 디지털 결제 전환이 더디게 진행돼 왔다. 정부 차원의 정책 개입 필요성이 제기된 배경도 여기에 있다.
28일 업계에 따르면 엔화 기반 스테이블코인 발행사 JPYC는 최근 라인 넥스트(Line Next)와 스테이블코인 활용을 위한 업무 협약(MOU)을 체결했다. 일본 정부가 디지털 결제 확산과 결제 인프라 고도화를 추진하는 가운데, 메신저 플랫폼과의 결합을 통해 실사용 영역을 빠르게 넓히려는 행보로 풀이된다.
일본 정부는 지난 2018년 비현금 결제 비중을 장기적으로 80%까지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를 제시하고, 세제 혜택과 인프라 지원을 중심으로 정책적 뒷받침에 나섰다. 그 결과 2024년 비현금 결제 비중은 40%까지 확대됐다. 다만 한국(92%), 미국(92%), 중국(91%) 등 주요 선진국과 비교하면 여전히 격차가 큰 상황이다.
이처럼 일본의 결제 환경이 현금 중심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상황에서 일본 정부가 주목하기 시작한 수단이 바로 엔화 기반 스테이블코인이다. 일본은 비현금 결제 비중을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를 제시한 뒤, 카드·QR 결제를 중심으로 보조금과 인프라 지원을 해왔다. 스테이블코인은 이 연장선에서 등장한 차세대 수단으로 기존 카드·전자머니 체계가 충분히 커버하지 못한 영역을 보완하는 역할을 맡을 것이라는 기대도 나온다.
구체적으로는 소액·영세 가맹점 결제에서 수수료 부담을 낮추고 정산 속도를 단축하는 한편, 국경을 넘는 온라인·오프라인 결제를 보다 빠르고 저렴하게 처리하는 방식이다. 나아가 인공지능(AI) 기반 서비스와 기계 간 결제(M2M), 탈중앙화금융(DeFi・디파이), 실물자산(RWA) 등 온체인 금융에서 활용되는 기반 통화로 기능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일본 금융청(FSA) 인가를 받은 첫 엔화 스테이블코인 ‘JPYC(JPY Coin)’가 꼽힌다. 지난해 10월 발행을 시작한 JPYC는 은행 예금과 일본 국채를 담보로 1:1 가치가 보장되는 엔화 연동 토큰으로 규제상 ‘전자결제수단’으로 분류된다.
JPYC는 기존 카드·전자머니 체계가 충분히 대응하지 못했던 소액·영세 가맹점 결제와 온체인 금융 영역을 주요 활용 분야로 설정했다. 결제 부문에서는 리테일·이커머스 결제 인프라 사업자와 제휴해 JPYC를 결제 옵션으로 연동하고, 일정 기간 발행·정산 수수료를 사실상 0에 가깝게 낮추는 방식을 도입했다. 카드 수수료 부담으로 디지털 결제 도입을 주저하던 영세 점포에 ‘수수료 부담이 낮은 디지털 엔’이라는 대안을 제시하겠다는 구상이다.
기업·B2B 영역에서는 시스템 연동 솔루션 업체와 협력해 JPYC를 기업의 전사자원관리(ERP)·회계 시스템과 간편하게 연결하는 환경을 구축하고 있다. 이를 통해 기업 간 대금 정산이나 온라인 서비스 이용료 결제를 엔화 스테이블코인으로 처리하는 실증 사업이 진행 중이다. 해당 구조를 활용하면 한국 기업이 일본 파트너사에 대금을 송금할 때, 기존의 원화·달러·엔화 간 복잡한 환전 절차를 거치지 않고 스테이블코인을 매개로 실시간에 가까운 정산이 가능해진다.
수익 모델 역시 기존 전자결제 사업자와 차별화된다. JPYC는 발행 자금을 일본 국채와 은행 예금으로 운용하며, 이 가운데 80%를 국채에 투자하고 나머지 20%는 예금으로 보유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일본 국채에서 발생하는 이자 수익을 핵심 재원으로 삼는 구조다. 현재 일본 장기 국채 금리가 3%를 웃돌고 있는 만큼, 발행 규모가 확대될수록 이자 수익 역시 빠르게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이 과정에서 스테이블코인 발행사가 일본 국채 시장의 새로운 매수 주체로 부상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오카베 노리타카 JPYC 대표는 “일본은행이 국채 매입을 줄여가는 상황에서, 스테이블코인 발행사들이 향후 수년 내에 국채 최대 보유자로 부상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현 시점에서 JPYC의 사용 규모는 아직 제한적이다. 제도권 인가를 받은 첫 엔화 스테이블코인이라는 상징성과 기업 인프라·메신저 플랫폼과의 제휴를 통해 실사용 사례를 조금씩 넓혀가고 있지만, 일본인의 일상 소비에서 현금을 대체하는 단계에 이르렀다고 보기는 어렵다.
가장 큰 과제로는 낮은 유동성이 꼽힌다. JPYC는 현재 이더리움과 폴리곤 네트워크를 지원하고 있으며, 전체 보유 지갑 수는 약 9000개 수준으로 집계된다. 다만 실제 전송에 참여하는 활성 주소 비중은 제한적인 상황이다.
온체인 데이터를 살펴보면 유통 규모의 한계가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 이더스캔에 따르면 이더리움 메인넷에서 JPYC 보유 지갑 수는 603개로 집계됐다. 최근 24시간 기준 토큰 전송 역시 35건에 그쳤다. 같은 기간 거래대금도 592달러 수준에 머물러, 실질적인 거래 활동은 극히 제한적인 모습이다.
폴리곤 네트워크에서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폴리곤스캔 기준 지난 24시간 JPYC 전송 횟수는 179건으로 전일 대비 53% 감소했으며, 거래대금 역시 40달러 수준에 그쳤다. 탈중앙화거래소(DEX)에서 형성된 JPYC-USDC 풀의 유동성도 대부분 1만달러 미만으로, 실사용 결제나 대규모 송금 인프라로 활용되기에는 충분한 깊이를 확보하지 못한 상태다.
JPYC는 이러한 한계를 돌파하기 위한 전략으로 일본 최대 메신저 플랫폼인 라인(LINE)과의 연동을 내세우고 있다. 월간 활성 이용자 수(MAU) 9000만명에 달하는 플랫폼에 자연스럽게 녹아들 경우, 별도의 학습 과정 없이 송금과 결제를 경험하게 만들어 사용성을 빠르게 끌어올릴 수 있다는 판단이다. 메신저인 라인에 JPYC를 직접 결제·송금 수단으로 탑재하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오카베 대표는 “일상과 밀접한 서비스에서 JPYC가 활용될 수 있다는 점은 일본 내 스테이블코인 이용에 있어 큰 전환점이 될 것”이라며 “특히 보상이나 일상 결제처럼 사용자들이 직접 가치를 체감할 수 있는 분야에서 엔화 기반 스테이블 코인의 편의성을 적용하는 의미 있는 진전”이라고 말했다.
최근 국내에서 스테이블코인 관련 법안 논의가 구체화되며 카카오페이 주가가 급등한 것 역시,메신저 기반 플랫폼에 스테이블코인이 결합할 경우 나타날 수 있는 파급력을 보여주는 사례다.
이준호 하나증권 연구원은“사용자 최접점에 있는 플랫폼이 경쟁력을 갖고 있다”며“네이버,카카오 등 새로운 금융의 큰 축으로 자리 잡아 혁신을 가속화시킬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출처: BlockM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