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발 오일쇼크 막자”…각국 중앙은행, 美 국채 820억달러 던졌다 -FT
[블록미디어 명정선 기자] 이란 전쟁 발발 이후 전 세계 중앙은행들이 미국 국채를 기록적인 속도로 매각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동 분쟁으로 인한 에너지 가격 급등과 자국 통화 가치 하락에 대응하기 위해 각국이 ‘최후의 보루’인 미 국채를 팔아 달러 현금 확보에 나선 영향이다.
30일(현지시각)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해외 중앙은행 및 정부 등 공식 기관이 뉴욕 연준에 수탁한 미국 국채 잔액은 2조 7000억달러로 지난 2월 25일 이후 한 달 만에 820억달러(약 110조원) 급감했다. 이는 유럽 재정위기 여파가 남아있던 2012년 이후 약 14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다.
시장 전문가들은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불러온 에너지 공급망 마비가 각국의 ‘달러 박스’를 열게 만들었다고 분석한다. 원유 가격이 치솟으면서 수입 대금 결제를 위한 달러 수요가 폭증한 반면, 강달러 현상으로 자국 통화 가치가 급락하자 중앙은행들이 미 국채를 내다 팔아 시장 개입에 나섰다는 것이다.
특히 원유 수입 의존도가 높은 신흥국들의 움직임이 두드러진다. 미국 외교협회(CFR)의 브래드 세서 선임연구원은 FT에 “터키, 인도, 태국과 같은 원유 수입국들이 달러로 결제되는 원유 가격 상승분을 감당하기 위해 국채를 매각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실제로 터키 중앙은행은 이란 공격이 시작된 지난 2월 말 이후 외환보유고에서 약 220억 달러 규모의 유가증권을 처분했으며, 이 중 상당 부분이 미 국채인 것으로 알려졌다.
자국 통화 가치 하락을 방어하려는 목적도 크다. 브래드 세서 연구원은 “환율이 밀리면 수입 물가가 치솟아 국내 경제에 막대한 타격을 준다”며 “중앙은행들이 통화 약세를 저지하고 인플레이션 압력을 낮추기 위해 미 국채를 현금화해 시장에 달러를 풀고 있다”고 설명했다.
각국 중앙은행의 이 같은 행보는 가뜩이나 불안한 미 국채 시장에 추가적인 하방 압력을 가하고 있다. 중동 분쟁발 인플레이션 우려로 채권 가격이 하락(금리 상승)하는 상황에서 대규모 매도 물량까지 쏟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달 들어 2년물과 10년물 미 국채 금리는 2024년 이후 최대 상승 폭을 기록하며 정부와 기업의 조달 비용 부담을 키우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번 현상이 단순한 환율 방어를 넘어, 지정학적 리스크에 따른 ‘유동성확보’ 차원이라는 분석도 내놓는다. 스티븐 존스 에이곤 자산운용 최고투자책임자(CIO)는 “중앙은행들이 불확실한 미래에 대비해 비상금을 챙기고 있는 것”이라며 “말 그대로 전쟁 자금을 축적(Stocking the war chest)하는 움직임”이라고 평가했다.
장기적으로는 미 국채의 위상 변화를 보여준다는 지적도 나온다. 메건 스위버 뱅크오브아메리카(BofA) 전략가는 “미 국채 시장 규모가 2012년 대비 3배 가까이 커졌음에도 수탁 잔액이 당시 수준으로 줄어든 것은 주목할 만한 사건”이라며 “해외 기관들이 포트폴리오를 다변화하며 미 국채 의존도를 낮추려는 거대한 흐름이 가속화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출처: BlockM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