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픽] 은행 위협한다던 스테이블코인…백악관 보고서 “영향 미미”
[블록미디어 지승환 기자]스테이블코인이 보유자에게 수익을 나눠주는 ‘이자 지급’ 허용 여부를 둘러싼 논쟁이 뜨겁다. 발행사가 이자를 주기 시작하면 시중 은행의 예금이 고갈되고 대출 기능이 마비될 것이라는 전통 금융권의 강력한 반대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예금 대체 공포’가 사실상 근거가 희박하다는 미 정부의 공식 분석이 나오면서, 그간 이자 지급 제한을 원화스테이블코인도입의 핵심 리스크로 꼽아온 국내 논의에도 적지 않은 시사점을 던지고 있다.
미국 백악관 직속 경제자문위원회(CEA)는 지난 8일(현지시각) ‘스테이블코인 이자 지급 금지가 은행 대출에 미치는 영향(Effects of Stablecoin Yield Prohibition on Bank Lending)’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번 보고서는 스테이블코인 발행과 준비금, 이자 지급 제한 등을 규정한 ‘지니어스법(GENIUS Act)’과, 현재 미국 의회에서 논의 중인 ‘클래러티 법안(CLARITY Act)’을 둘러싼 입법 논쟁과도 맞물려 있다. 지난해 통과된 지니어스법은 스테이블코인을 단순 보유하는 것만으로 이용자에게 이자나 수익률을 지급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기본 규제 틀을 마련했다. 반면, 클래러티 법안은디지털자산시장 전반을 포괄적으로 규율하기 위한 종합 법안으로, 현재거래소·플랫폼 등 중개 영역까지 포함해 스테이블코인 보상 구조 전반을 어떻게 규율할지를 두고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특히 발행사 외 제3자를 통한 보상 구조까지 규율 대상에 포함할지 여부가 쟁점으로 부각되고 있다.
위 법안과 관련해 최근 미국 은행협회(ABA) 등 전통 금융권은 스테이블코인에 이자 지급이 허용될 경우 예금 이탈로 은행의 대출 기반이 약화될 수 있다는 주장을 제기해왔다. 반면 코인베이스 등 일부 업계는 이자 및 보상 구조에 대한 과도한 제한이 시장 혁신을 저해할 수 있다며 법안에 우려를 표해왔다. 이러한 이자 지급 여부를 둘러싼 업계와 전통 금융권 간 갈등은 클래러티 법안 논의 지연의 주요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그러나 CEA는 실제 데이터 분석을 통해 전통 금융권의 우려가 과장됐을 수 있다는 결과를 제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스테이블코인의 이자 지급을 전면 금지하더라도 은행 대출 증가 효과는 21억달러(약 3조원)로, 전체 대출의 0.02%에 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규제를 통해 기대할 수 있는 은행 보호 효과가 사실상 제한적이라는 의미다.
반면 이자 지급이 금지될 경우 이용자들이 포기해야 하는 수익은 연간 8억달러(약 1조18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비용 대비 편익 비율도 6.6으로 나타났는데, 이는 대출 1달러를 늘리기 위해 소비자 수익 6.6달러를 희생해야 한다는 뜻으로 정책의 경제적 효율성이 낮다는 점을 보여준다. 특히 은행권이 보호 대상으로 강조해온 중소 커뮤니티 은행의 대출 증가 효과는 0.026%(5억달러)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규제의 효과가 이토록 미미한 이유는 무엇일까? 보고서는 스테이블코인 자금이 은행 시스템을 떠나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한다. 사용자가 은행에서 돈을 인출해 스테이블코인을 사면, 발행사는 그 돈으로 국채를 매입하거나 다시 다른 은행에 예치한다. 결과적으로 자금은 형태만 바뀔 뿐 금융 시스템 내에 머물며 다시 대출 재원으로 활용된다.
특히 대출 시장에서 완전히 격리되는 자금의 비중은 매우 낮다. 현재 써클(Circle) 등 주요 발행사의 준비금 중 은행 계좌에 현금으로 묶여 있는 비중은 약 12%에 불과하며, 나머지 88%는 국채나 레포(Repo) 시장에서 운용되고 있다. 레포 시장은 국채를 담보로 단기 자금이 오가는 금융시장으로, 자금이 금융 시스템 안에서 계속 순환하는 통로 역할을 한다. 대출 감소의 원인으로 지목된 스테이블코인이 실제로는 미 국채 시장의 주요 수요처로 기능하며, 전체 금융 시스템의유동성을 유지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보고서가 짚어낸 또 다른 핵심은 은행의 행동 방식이다. 가설대로 예금이 은행으로 다시 유입되더라도, 은행은 그 돈을 100% 대출에 쓰지 않는다. 은행은 규제 준수와 예기치 못한 인출에 대비해유동성버퍼(초과 지급준비금)를 쌓아두려 하기 때문이다. 분석 결과, 확보된 대출 여력 1달러당 실제 대출로 이어지는 금액은 50센트 미만에 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구조적 특성은 각 금융 인프라가 제공하는 편익 차이와도 맞물린다. 전통적인 은행 시스템은 예금자 보호 제도 등을 통해 안정성을 제공하는 반면, 스테이블코인은 24시간 거래와 빠른 결제, 글로벌 송금 등에서 활용도가 높다. 또한 1대1 준비금 기반 구조를 통해 일정 수준의 안정성을 확보하려는 특징을 갖는다.
따라서 스테이블코인을 일률적으로 제한할 경우 이용자는 더 높은 수익 기회나 다양한 금융 서비스 접근성을 포기해야 할 수 있다. 일부 수요가 해외 플랫폼 등으로 이동할 가능성 또한 제기된다.
국내에서도 스테이블코인이 은행 예금을 잠식하고 대출 기반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유사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금융당국은 원화 스테이블코인으로 인해 은행 예금이 이탈되어 금리 체계가 교란되고 대출 기반이 약화할 수 있다는 점을 주요 리스크로 보고 있다. 이억원 금융위원장은 국정감사에서 스테이블코인 이자 지급을 불허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이러한 문제의식과 달리 이번 CEA 보고서는 해당 우려가 실제 은행 대출과 자금 흐름에 미치는 영향 측면에서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자금이 금융 시스템 내에서 순환하는 구조와 은행의 대출 행태를 고려할 때, 규제를 통해 얻을 수 있는 효과는 제한적인 반면 이용자 편익 감소는 상대적으로 클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스테이블코인 이자 규제는 은행 보호라는 목적 대비 실효성이 크지 않은 반면, 소비자의 수익 기회와 금융 선택권을 제약할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 역시 원화 스테이블코인 제도 설계를 앞둔 만큼, 예금 이탈 우려를 넘어 이용자 편익과 자금 흐름 구조를 함께 고려한 정책 접근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출처: BlockM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