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경제, 세계로 간다⑦] “소송 대신 가이드”⋯미국이 설계하는 ‘자유로운 디지털 시장’
블록미디어 기획시리즈 '디지털경제, 세계로 간다' 미국편 2부
[콜로라도=블록미디어 오수환 기자] 미국이디지털자산(가상자산)산업 육성을 위한 핵심 전략으로‘규제 명확성’확보에 나섰다.스테이블코인과토큰화등 새로운 금융 인프라가 확산되는 가운데, 자산의 법적 성격과 규제 기준을 선제적으로 정리해 시장 불확실성을 낮추고 혁신을 촉진하겠다는 움직임이다.
18일 업계에 따르면 미국증권거래위원회(SEC)는 지난달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와 함께디지털자산규제 체계 정비에 들어갔다. 핵심은 디지털자산이 증권인지, 상품인지, 혹은 별도 범주의 자산인지를 보다 명확히 구분하는 데 있다.
SEC가 제시한 방향은 명확하다. 디지털자산을 모두 증권 규제 대상으로 보는 대신, 자산의 기능에 따라 디지털 상품, 디지털 수집품, 디지털 도구, 결제용스테이블코인, 디지털 증권 등으로 나눠 각각 다른 규율 체계를 적용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어떤 자산에 SEC가 관여하고, 어떤 자산은 CFTC 또는 별도 체계에서 다뤄지는지 시장 참여자들이 예측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의미다.
이 같은 접근은 미국의 디지털자산 정책이 ‘사후 제재’ 중심에서 ‘사전 기준 제시’ 중심으로 옮겨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과거에는 개별 사건에 대한 집행과 소송을 통해 규제 방향이 제시되면서 업계가 스스로 법적 위험을 판단해야 했다. 반면 이번 SEC처럼 규제 당국이 자산의 성격과 적용 기준을 사전에 명확히 제시하는 방식으로 정책 기조가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폴 앳킨스 위원장은 지난 2월 덴버에서 열린 이드덴버(ETHDenver) 행사에 참석해 “지난 행정부의 불투명한 규제가 혁신을 제약한 측면이 있다”며 “이제는 기술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하면서도 실질적인 위험을 정밀하게 다루는 규제 체계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SEC는 또 증권이 아닌 디지털자산이라도 자금 조달 과정에서 투자계약 형태로 판매되면 증권법 적용을 받을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다만 그 투자계약이 일정 조건 아래 종료될 수 있다는 점도 함께 제시했다.
이번 규제 정비는 스테이블코인과토큰화시장 확대와도 맞물려 있다. 디지털자산이 더 이상 투기성 자산에 머무르지 않고 결제, 송금, 자산 유통 등 금융 인프라로 확장되는 상황에서, 자산의 법적 성격이 불분명하면 기업과 금융회사가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미국이 규제 명확성을 강조하는 배경에도 이러한 산업 환경의 변화가 반영돼 있다.
행사 현장에서 <블록미디어>취재진과 만난 헤스터 피어스 SEC 위원은 “디지털자산 규제는 개인의 선택과 자유를 존중하는 방향으로 설계돼야 한다”며 “사람마다 어떤 자산에 가치를 둘지 스스로 결정할 권리가 있으며, 규제는 이를 전면적으로 막는 장치가 아니라 합리적 질서를 만드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같은 기조는 연방정부 뿐만 아니라 (州) 정부 차원에서도 확인된다. 특히 콜로라도주는 2019년 ‘디지털 토큰법’을 제정해 사용·소비 목적이 명확한유틸리티 토큰에 대해 증권 규제를 완화했다. 이어 2022년에는 주민들이비트코인(BTC)과 이더리움(ETH) 등으로 주 세금을 납부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등 개인의 선택을 전제로 디지털자산 활용 범위를 확대해 왔다.
퉁 찬 콜로라도주 증권국장은 규제 당국을 시장의 ‘심판’에 비유하며 “시장의 중심은 기업 활동과 상업적 혁신”이라며 “규제의 역할은 경기를 대신 뛰는 것이 아니라 공정한 경쟁 환경을 조성하는 데 있다”고 말했다.
다만 미국 역시 이해관계 충돌과 정치적 변수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스테이블코인 이자 지급, 탈중앙화금융(DeFi·디파이) 규율 범위, 증권·상품 규제기관 간 관할 조정 문제를 둘러싸고 업계와 은행권, 정치권 간 입장이 엇갈리면서 클래리티 법안(CLARITY Act) 등 핵심 법안은 여전히 상원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규제 명확성이 산업 성장의 동력으로 작용하고 있지만, 허용 범위에 대한 사회적 합의는 아직 충분히 이뤄지지 않은 상황이다.
데이비드 칼라일블록체인분석업체 엘립틱(Elliptic)정책·규제 담당 부사장은“클래리티 법안 통과 여부와 관계없이 미국 규제 환경은 집행 중심에서 혁신과 투자를 뒷받침하는 방향으로 점차 이동하고 있다”며“SEC와CFTC가 내놓는 정책 성명과 가이드라인은 규제 장벽을 높이기보다 낮추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고,남은 쟁점은 그 규칙을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지에 대한 정치적 선택”이라고 평가했다.
출처: BlockMedia